스마트폰에 뜬 동영상으로 ‘군함도’를 봤다. 모 방송 영재발굴단에 소개됐던 똘똘하게 생긴 9살 어린이다. 서울 이태원 거리에서 외국 사람들을 상대로 버스 무대에서 역사에 관해 얘기한다. 영어 실력도 출중하지만, 똑 부러지게 역사를 알리고 있다. 일본은 2차대전 끝판에 한국인들을 강제징용해 그 섬에 가둬놓고 석탄을 캤단다. 일본은 그런 사실은 알리지도 않고 공업혁명의 유산으로 포장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군함도’를 올렸다며 ‘그만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쩌다 어른인 내가 오히려 부끄럽기 그지없다.

뭐니 뭐니 해도 창업은 프랜차이즈였는데, 요즘엔 나쁜 사업의 대명사가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행상으로 시작해 채소·과일 전문으로 연 매출 500억 원대 업체로 키워낸 성공신화의 주인공이었다. 인터넷을 도배하는 그 ‘야채가게’ 대표의 갑질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가 내세우는 경영 슬로건이 실로 가관이다.

‘월래 대청소하는 날/화끈하게 일하는 날/수퍼바이져 하는 날/목 빠지게 일하는 날/금방 일하고 또 일하는 날/토하도록 일하는 날/일어나지 못하게 일하는 날’이라며 혹독하게 채근했단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거금 500만원씩 거둬들여 이른바 ‘똥개 교육’까지 시켰단다. 어린이들을 위해 순화된 말로 바꾸면 ‘진돗개 교육’인데 뺨따귀 때려가면서 개 같은 교육도 했단다. 기가 차 말문마저 꽉 막힌다. 제발 갑질 좀 그만둬라. 

돈 좀 있다고 여직원을 호텔로 데려가 성추행하려던 호식이두마리치킨, 한때 잘나갔던 비비큐치킨, 신선설농탕 등의 갑질은 몇십 년간 썩은 똥 덩이가 떠올랐을 뿐, 언론에 뜨는 것이야 빙산의 일각이다. 예전부터 오너들의 갑질에는 항변조차 할 수 없는 불문율이었다. 폭언이 녹취돼 고발당한 종근당 회장 외에도 몽고식품, 대림산업, 현대비앤지스틸 등 오너들의 갑질은 수두룩하다. 최근의 사례 중 갑질의 끝판왕은 경비원을 폭행했던 미스터피자 회장이다. 이번에는 자기 아들에게는 7천만원씩이나 월급을 올려주었단다. 어안이 벙벙하다. 얄팍한 연봉에도 감사하며 사는 나와 같은 조무래기는 명함조차도 못 내미는 세상이다.

꿀밤 한 방 얻어맞을 각오로 하는 말이지만, 외국영화에 맛 들인 뒤 보는 국산영화는 늘 2% 부족해 뒷맛이 개운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소재라고 하니 결론도 뻔할 뻔 자 아니겠냐며 그만두라고 말렸었다. 옆지기는 모처럼 주말에 맞췄다며 영화 <군함도>를 예매해 놨단다. 내가 그렇게 뺀질대며 놀려대도 참는 데야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억지 춘양으로 끌려가는 척하며 극장엘 따라갔다. 덕분에 우리 영화를 모처럼 봤다.

원자폭탄이 터졌던 일본 나가사키 옆 ‘군함도’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감옥섬’, ‘지옥섬’이라고도 불렀다. 섬의 둘레를 콘크리트 옹벽으로 치고 높고 낮은 건물까지 올려 모양새가 마치 군함처럼 생긴 섬이다.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이 ‘콩깻묵 주먹밥’ 한 덩이로 끼니를 때우며 강제 노역을 당한 하시마 탄광이 있던 섬이다. 원폭 이후 방사능 때문에 일본인마저도 떠나 아무도 살지 못하던 무인도로 변했다. 그랬거나 말거나 잇속에 밝은 일본은 지지난해 이맘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그 섬을 포함했다.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 유산으로 둔갑시켜 관광 명소라면서 외국 사람들을 상대로 엄청난 돈벌이 중이다.

별별 사람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남 잘되면 배부터 아프다. 가만 놔둘 리가 없다. 개봉 전부터 바다 건너 일본의 우익과 반대를 위한 반대를 고수하는 국내외 네티즌이 기회는 찬스라며 융단폭격을 마구 퍼부었다. 감독이 나와 해명했건만 역사가 빠진 단순한 상업영화라는 둥 댓글 테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맞다? 그렇다? 이번엔 예전과는 너무 달랐다. 직접 보니 우리 영화도 많이 변했음을 실감했다. 뽀뽀 한번 없이도 사랑을 이만큼 잘 그려내기란 쉽지 않다. 가 보면 맘이 확 달라진다. 말도 안 되는 말은 이제 그만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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