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투구꽃

                                                     김완

거창 우두산 가는 길 고견사 입구에서 너를 만났다
낮은 풀숲에 숨어 지나가는 나를 빼꼼히 쳐다보는
보라색 자태가 매혹적이었다 한눈에 식물도감에
나오는 전형적인 모습이 눈에 쏘옥 들어왔다
네 모습을 우선 사진기에 담는데 감개가 무량했다
뿌리인 초오는 누군가의 사약으로도 쓰였다 
신분의 귀천에 따라 다른 사약을 썼다니
인간은 죽음 앞에서도 공평하지 못하구나 유명한
너의 이름을 내과 전공의 시작하던 해 처음 알았다
신경통에 좋다고 뿌리를 달여 먹고 손발이 마비되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숨을 쉴 수 없어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에서 나타나는 무시무시하고 괴이한 심전도
초오 중독에 의한 부정맥은 잘 알려져 있더구나
꽃이 피지 않는 새순이 쑥이나 미나리와 비슷하여
투구꽃을 잘못 캐어 나물로 먹는 일도 있다 한다 
심심 유곡 홀로 밤을 지새우며 뿌리에 맹독을 키우는 
예쁜 척 거짓된 사랑을 비웃으며 절치부심하는 너는
산문 밖 세상에서는 피울 수 없는 풍경風磬 같은 꽃이다

사진작가 조성근.
사진작가 조성근.

 

 

 

 

 

 

 

 

 

 

 

 

김완 1957년 광주출생, 200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 '너덜겅 편지'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가 있다. 2018년 제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 시인상 수상, 김완혈심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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