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촉사(灌燭寺) 붉은 우체통에 동박새가 산다  


                                                                                               송유미

농부화가 김순복
농부화가 김순복

 

-송재 서재필 선생 본가 인납

관촉사 붉은 우체통 바라보는
거구(巨口)의 은진미륵 아래 서니 
나도 알 수 없는 마음이 편지를 쓰네. 시(詩)를 쓰네. 
둥근 달은 호수에 빠져 지느러미 달고 헤엄치는데
가만히 눈 감고 기도하는 내 열손가락에서 붉은 꽃이 피네.
동박새는 동백 숲에만 산다는데
관촉사 우체통에서도 동박새가 우네.
한번은 병들어 죽어버릴 인생이
무슨 경계가 그리 많은지 자꾸
쓰던 편지를 찢네. 시를 찢네. 
시를 써도 바람도 구름도 
달빛도 햇빛도 능가할 수 없겠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욕심이 
은진미륵 아래 서니, 시를 쓰네.
그리움이 먼저 와서 답장을 쓰네.
 

 

 

 

송유미 1955년 서울출생,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검은 옥수수 밭의 동화> 외 다수,<전태일 문학상>, <김만중 문학상>, <김민부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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