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고미경

집으로 가는 길에 겨울비 내린다 
가로등 불빛 아래는 추운 빗줄기들
라디오의 FM 93.1에는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빗소리를 낮은 음으로 켜는 첼로

턴테이블의 바늘처럼 나는
밤의 음반에 새겨진 골을 훑는다 
마음의 앰프에서 증폭하는 빗소리들은
먼 곳에서 와서 다시 먼 곳으로 사라지고

밤의 모퉁이에는 아직도
담배 한 개피를 따뜻하게 나눠 피는 연인들이 있고

살아가야 할 멋진 이유는 없지만 
핸들을 잡듯 생활을 두 손에 꼬옥 쥔 채 
나는 집으로 가고 있다

오렌지 불빛 난로 옆에서 
페르난두 페소아가 건네준 ‘불안의 서’를 펼치면

빗소리 같은 활자들이 불면의 밤 속으로 밤 속으로……

사진  인송
사진 인송

 

 

 

 

 

 

 

 

 

 

 

 

 

고미경 1964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온양에서 성장,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인질』, 『칸트의 우산』, <비스듬히>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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