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녑
                                                  박수현
여름나기로 단골정육점에서 처녑을 샀다
소의 세 번째 위장인 처녑은
천 장의 잎새라는 뜻이랬다
검정 비닐봉지에 싸인 채 서너 근으로 
갈무리된 전 생애의 중량
밀가루를 묻혀 아코디언 같은 주름을 치댄다
위장 하나 다스리는 일이 
첩첩산중 만경창파를 이고 넘는 것 같다는데
어쩌자고 이 초식성 짐승은 
깊고 어둔 위장을 네 개나 붙잡고 있는 걸까 
쇠뜨기, 둑새풀의 독하고 푸른 숨결과 
매미의 울창한 울음과 
마지기 마지기 쏟는 작달비를 오래 되새김질 했겠다 

질기고 무더웠던 여름날을 견뎌내느라 
크고 순한 짐승의 위장 같은  
울음의 겹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처녑 한 젓가락을 기름장에 찍는 
적막한 허기의 저녁,  
씹을수록 싱싱해지는 천 장의 이파리가 
가망 없이 몸을 뒤집는다

화가 서길호
화가 서길호

 

 

 

 

 

 

 

 

 

 

박수현 2003년 계간시지《시안》으로 등단, 시집『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샌드 페인팅』등,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받음,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기금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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