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경기=박웅석 기자] 안산의 공장에 와서도 서울 가산동 회사에서도 아내가 아파서 요양하던 시골(여주)집에 혼자 있어도 정군영 회장은 ‘미안하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눈시울은 뜨거워지고 눈에는 눈물이 송글거린다.

'당신 가신지 이년 넘어 3년째 냉장고 한편 뒹굴어 다니는 가루음식 한 봉지~~ 배 곯을까 걱정돼~~ 당신 마음덩이 한 봉지'는 정 회장이 3년 전 작고한 아내(명기정)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담아낸 시(詩)다. 

정군영 회장이 3년전 작고한 아내가 요양했던 여주의 집에서 아내와 함께 가꾸던 꽃밭에 물을 주며 미안함과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사진=박웅석 기자)
정군영 회장이 3년전 작고한 아내가 요양했던 여주의 집에서 아내와 함께 가꾸던 꽃밭에 물을 주며 미안함과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사진=박웅석 기자)

칠순(七旬)을 바라보는 두선산업 정군영 명예 회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열네살의 나이에 고향 홍성을 떠나 집안 당숙이 운영하는 박스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우고 또 아내를 만나 기업을 일구면서 공원(공돌이), 남편, 아버지, 사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온 삶을 기억해내며 그 속에서 또 아내를 만난다.

정군영 회장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아내의 이름으로 ‘명기정장학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와 제도권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를 소개받아 이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아내가 살아생전 주변의 어려운 이들에 행했던 베품의 유지를 따른 것이다.

‘제2의 정주영’ ‘리틀 정주영’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우는 정 회장은 많이 배우지 못하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 없이 맨손으로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일궈냈다. 현재 국내 대표적인 건강식품 D사에 박스를 납품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두선산업은 특수포장에 관한 다양한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정군영 회장이 두선산업이 1000억 매출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어려움을 함께 했던 아내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사진=박웅석 기자) 
정군영 회장이 두선산업이 1000억 매출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어려움을 함께 했던 아내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사진=박웅석 기자) 

두선산업 창업..대표는 아내 이름으로

두선산업은 정 회장이 초등학교 졸업 후 박스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단초가 돼 지금의 규모로 성장했다. 두선산업은 1984년 광명시 하안동에서 가정 부업으로 시작됐다. 정 회장은 아내가 주문 받은 물량을 밤새 작업해 놓으면 아침에 출근하면서 배달하고 저녁에 퇴근하면서 또 작업할 물량을 가져와 일을 했다.

정 회장은 1989년 다니던 회사에서 '이제 그만두고 직접 나가서 사업자를 내고 자기 일을 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정 회장이 생각하기에는 사실상 해고였다. 정 회장은 항의도 했다. 결국 회사가 요구하는 제안을 받아들여 아내와 함께 내 회사를 만들었다. 회사 대표는 아내의 이름으로 했다. 주변에서는 부도를 의심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선산업은 2000년 법인으로 전환하고 2006년 안산시 공장을 매입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이후 공장을 안산으로 옮기면서 성장하고 있다.

정군영 회장은 지난 2013년 베트남에 공장을 설립하고 삼성의 문을 두드렸다. 이런 무모하다시피 한 정 회장의 도전으로 두선산업은 현지에서 두선왕국으로 불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에 공장을 소개하는 정군영 회장. (사진=박웅석 기자)
정군영 회장은 지난 2013년 베트남에 공장을 설립하고 삼성의 문을 두드렸다. 이런 무모하다시피 한 정 회장의 도전으로 두선산업은 현지에서 두선왕국으로 불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에 공장을 소개하는 정군영 회장. (사진=박웅석 기자)

무모한 도전 베트남 공장 설립.. ‘두선왕국’ 
두선산업은 지난 2013년 ‘두선베트남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정군영 회장의 장남 정우혁 대표가 베트남 법인을 총괄하고 있다.

정군영 회장의 베트남 진출은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당시 삼성을 제외한 대한민국 그 어떤 기업도 베트남 진출을 꺼려했다. 정 회장은 무작정 베트남으로 달려가 공장 지을 땅 5천 평을 임대했다. 정 회장이 임대한 땅은 논으로 개발하기가 쉽지 않았다. 

공장 지을 땅을 임대한 정 회장은 그날부터 베트남 삼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무작정 찾아오는 정 회장을 반겨줄리 없는 삼성의 문을 계속 두드렸다. 정 회장은 정주영 회장이 500원짜리에 인쇄된 거북선으로 영국에서 돈을 빌려와 공장을 지은 일화를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삼성의 움직임이 보였다. 도대체 누군지 알아본다며 공장부지를 방문했다. 당시 부지만 임대하고 말뚝으로 표시만 해놓아 삼성에서 나온 상무가 놀라며 “삼성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냐. 아무런 준비도 없이 거래를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화를 냈다.

사실 정 회장은 삼성에 줄을 댈 인맥도 경력도 없었다. 정 회장은 국내에서 인정한 박스기술을 어필했다. 삼성은 “우리가 일을 준다 해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망할 수도 있다”는 조언에도 “무조건 하겠다”는 의지로 결국 삼성의 1차 납품업체로 선정됐다. 현재 베트남 공장은 10만 여평에 1천여 명의 현지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다.

베트남 두선산업 공장을 현지인들은 ‘두선왕국’으로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은 베트남 사업에 정진하면서 아픈 아내를 돌보지 못한 미안함을 평생 간직하고 가져가야겠다는 마음이다.

정군영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금도 매주 수요일 안산공장으로 출근해 공장라인에 들어가 직원들과 함께 박스를 접는다. (사진=박웅석 기자)
정군영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금도 매주 수요일 안산공장으로 출근해 공장라인에 들어가 직원들과 함께 박스를 접는다. (사진=박웅석 기자)

회사는 행복의 근원 … 가족 같은 직원 
정 회장은 “회사는 가족의 행복을 주는 근원이다. 자가용에 아내를 옆에 태우고 자녀를 뒤에 태우며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회사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고 항상 말한다. 정 회장의 경영철학은 ‘모두가 행복한 회사’다. 정 회장은 직원 복지에도 세심한 배려를 한다. 감자, 쌀, 옥수수 등 계절마다 제철 농산물을 직원들에게 선물한다. 정군영 회장은 “정주영 회장에게 배운 직원에 대한 배려”라고 말한다.

아내에게 대한 사랑과 그리움. 직원들에게 늘 다정한 정 회장은 일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깐깐하다. 두선산업 정상혁 대표는 “회장님은 직원들을 가족같이 아까고 사랑하신다. 그러나 일과 관련 잘못을 하면 가차 없이 지적하고 혼을 내신다”며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소개했다.

정 회장은 3년 전 작고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정 회장은 매주 수요일 안산공장으로 출근한다. 출근하면 회의에도 참석하고 특히 공장라인에 들어가 직원들과 함께 박스를 접는다. 

정군영 회장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아내의 유지를 이어 설립한 명기정 장학재단을 아내를 가장 많이 닮은 큰 딸인 두선코스매틱 정청옥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사진=박웅석 기자)
정군영 회장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아내의 유지를 이어 설립한 명기정 장학재단을 아내를 가장 많이 닮은 큰 딸인 두선코스매틱 정청옥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사진=박웅석 기자)

아이를 사랑했던 아내 .. ‘명기정 장학재단’ 설립
정군영 회장은 “아내는 살아생전에 아이를 좋아하고 주변의 어려운 애들이 있으면 조건 없이 도와줬다. 특히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안고, 무릎에 앉히고 달래주며 장애아 사랑이 남달랐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아내의 이름으로 ‘명기정 장학재단’을 만들어 아내가 살아서 못다 이룬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 회장은 엄마(명기정)의 품성을 가장 많이 닮은 큰 딸인 두선코스매틱 정청옥 대표에게 이사장직을 이양할 계획이다. 실질적인 장학회 운영도 정 대표가 하고 있다.  

정청옥 대표는 “할머니를 어머니라 부르는 아이들, 장애우, 부모가 있어서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명기정 장학재단‘의 취지다”며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아내에게 바치는 사부곡(思婦曲)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정군영 회장은 아내가 아프면서 요양을 위해 마련한 여주의 시골집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수령이 100년쯤 돼 보이는 느티나무가 있는 정 회장의 시골집 뒷뜰에는 항암에 좋다는 식물과 나무들이 빼곡하다. 정 회장은 아내를 생각하며 매일 물을 주며 아내를 그린다.

치료 후 돌아오겠다던 아내는 재발 후 입원하면서 끝내 여주 시골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 회장은 아내와 함께 쓰던 방과 침대가 편하다. 아내와 함께 생활했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시골집 거실 창문틀에 놓여있는 20여권의 ‘항암’ 관련 책자가 정 회장의 아내를 위한 정성과 사랑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정 회장은 오늘도 시를 통해 아내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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