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두 달간 금융계의 최대 이슈였던 KB금융 경영진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징계가 '주의적 경고'라는 예상보다 훨씬 가벼운 징계로 마무리됐다. 

태산이 떠나갈 듯 요란하더니 겨우 쥐 한 마리가 나온 꼴이다. 당초 KB금융그룹의 경영 난맥상에 대한 당국의 징계 의지는 추상과 같았다. 

대규모의 검사인력을 투입해 '특별검사'를 실시하고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는 현직 유지가 어려운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 방침을 통보한 바 있다. 

금융계에서는 자산 규모 1위 은행인 국민은행을 비롯한 KB금융 수뇌부가 한꺼번에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며 당국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중징계 통보에서 징계 결정까지 어영부영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리면서 징계 대상자들이 맹렬히 저항하고, 중간에 감사원까지 끼어들어 일부 징계 결정의 부당성을 제기하는 상황이 야기됐다. 

금융당국의 징계 의지가 꺾인 것 같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금감원은 21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마라톤 회의를 했지만, 결국 하나마나 한 경징계로 끝을 보고 말았다.  

이번 KB금융그룹 파동은 기존 금융감독시스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금감원은 빈발하는 금융사고와 경영진 알력으로 급격하게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KB금융그룹에 확실한 교훈을 주려고 총력을 동원했다. 

엘리트 요원들을 투입해 전방위적으로 검사를 벌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을 얻어 중징계 방침을 결정했다.

그러나 금융위의 유권해석은 감사원 감사를 통해 부인됐고, 금감원은 끝내 중징계에 충분한 근거와 논리를 제시하지 못해 감독ㆍ제재기관으로서의 권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애초부터 조사 자체가 부실했거나 명확한 제재 근거가 없는데도 정무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중징계를 하려다가 보이지 않는 더 큰 힘에 밀려 권위를 상실하는 낭패를 봤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장의 자문기구 성격으로 법적 지위가 애매한 제재심의위도 독립된 기관으로 승격시키고, 제재심리 절차가 시작되면 정부나 국회, 감사원 등 제3자의 입김을 원천차단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KB금융그룹 파동은 아울러 절대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낙하산 경영자들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숙제를 남겼다. 

어윤대 전 회장 체제 3년,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임영록 회장 체제 아래서의 KB금융그룹의 경영은 말 그대로 최악의 대혼란이었다. 

어윤대 전 회장 때에는 회장과 이사회가 얼굴을 붉히며 사사건건 대립하는가 하면 차기 회장 자리를 놓고 회장과 은행장이 이전투구식 싸움을 벌였다. 

이런 '막장 경영'은 임 회장 체제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 사이에 은행은 엉망이 됐다. 주가는 크게 떨어지고 이익도 줄었다. 

도쿄 지점에서는 5천억원대의 부당대출이 일어났고, 국민주택채권 위조 사건,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직원들은 감옥에 가고, 심지어 자살한 사람도 있는데 회장과 행장에게는 "앞으로 조심하세요"라고 주문하는 정도의 경징계가 내려졌다.  

당국의 징계 수위가 어떤 것이든 임 회장과 이 행장은 무거운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책임에는 법적 책임도 있지만, 도의적, 윤리적 책임도 있다. 

특히 KB금융지주 사장에서 회장으로 승승장구하며 5년째 경영을 맡고 있는 임 회장의 책임은 막중하다. 

부당대출, 국민채권 위조, 횡령,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등 최악의 사고들이 일어나는 동안 임 회장은 KB금융지주 사장, 회장으로 총체적 관리를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었다. 

이 행장은 리스크 담당 부행장이었다. 

지금 금융계에는 아무나 KB금융그룹의 회장, 행장을 시켜도 지금보다 잘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신뢰가 실추된 것이다. KB금융그룹 경영진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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