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속담은 유통기한이 제법 긴 편에 속한다. 요즘에는 거의 쓰지 않아 폐기처분 대상이지만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새해 아침이다. 직업의 귀천이나 체면을 따지지 않던 시절에는 꽤 설득력이 있었던 말이다. 돈을 벌 때는 험하게 벌었지만 쓸 때는 그야말로 정승처럼 인덕을 베풀며 귀하게 써야 한다는 경제관도 살아있는 귀한 말이다. 요즘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려는 사람들뿐인 세상에서는 궤변이고 꿈만 같은 얘기다. 이른바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서 개 같이 벌어서 개 같이 쓰는 게 당연지사, 개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 빡빡하다. 정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눈치 빠르기가 도갓집 강아지 같은 사람은 금방 눈치를 챘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는 말이다. 황금개의 해라고 해서 덕담으로 치부하지 마시라. 옛날부터 전해오던 개에 관한 속담은 뜯어볼수록 속뜻이 웅숭깊다.

개 못된 것은 부뚜막에 올라가고, 못된 개가 들에 가서 짖고 겁 많은 개는 제집에서만 끙끙거린다더니, 여의도 돔형지붕 안에서는 자기들끼리 개 꾸짖듯 하는 꼴이 우습다. 개밥 취급당한 민생은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 견원지간(犬猿之間) 아니랄까 봐 치고받고 야단났다. 때로는 개에게 물린 원숭이가 개처럼 소리를 내는가 하면 한 마리 개가 개소리를 내면 뭇 개들도 따라서 왈왈댄다. 개 꼬리 석삼년 묵어도 황모 못 된다는 말은 틀림없다. 그야말로 개입에서 상아 날 리 없고 개가 개소리 내는 건 당연지사, 개 눈에는 똥만 보이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건 다반사라서 검둥개 멱 감긴 격이다. 개 팔아 두 냥 반이라더니 이전투구(泥田鬪狗) 와중에 흙 묻은 개뼈다귀들만 천지사방으로 굴러다닌다. 저 먹자니 입맛 없고, 개 주자니 아깝다는 정치판이 개판이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딱 들어맞는다.

개에게 호패 채우고 남바위 얹고, 개 발에 편자까지 끼운 격이 됐다. 큰 감투를 쓰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들 도둑으로만 보인다. 겨를 먹던 개가 쌀 못 먹을 리 없고, 겨 먹은 개는 들키면 혼쭐나지만, 쌀 먹은 개는 표시가 안 나니 설령 들켰다 해도 흐지부지 그러려니 개구멍으로 넘겨주는 세상이다. 그야말로 강아지에게 메주 멍석을 맡기고 들일 나간 꼴이 됐다. 콩엿 사 먹은 하찮은 똥개가 버드나무에 올라가 원숭이처럼 재주도 부리며 꼴값한다. 잘 짖는 개라고 다 좋은 개는 아니다. 개도 닷새만 되면 주인을 알고 꼬리를 친 다음에 밥을 먹는다는데, 곁에만 다가서도 되레 겁주며 으르렁대니 개도 텃세를 한다는 말도 역시 맞다. 이러다가 내 밥 먹는 개한테 발뒤축 물리게 생겼다. 선거철에는 구십 도 각도로 허릴 꺾던 자들도 당선만 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드름피우고, 잘 길러놓으니까 미친개 되어 주인을 하수로 보고 오히려 겁박하는 개 같은 세상이다.

필자는 베이비붐 세대(1954년~1963년생)이다. 휴전 이후, 씨는 받아놓고 가라는 할머니의 성화에 부랴부랴 이웃 마을 곱디고운 처자였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혼사를 맺었다. 배 속에 아기가 생기자 안심하며 아버지는 육군 포병부대로 입대했단다. 그 시절에는 웬만한 젊은이들은 전쟁터에 나가 죽었단다. 제대 후, 대포 쏘는 기술밖에는 없던 아버지는 눈앞에 닥치는 대로 소 장사에서부터 벽돌공장, 연탄공장 등에서 힘을 써서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가리지 않으셨단다. 세월이 흘러 필자도 부모부양과 자식 교육을 끝낸 후 어찌할 수 없이 현직에서 은퇴했다. 그야말로 전쟁의 후유증은 베이비붐 세대를 실존적 위기로 몰아 옴짝달싹 못 할 개 목줄을 스스로 옥죄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버지 세대처럼 자식들이 부양해 줄 기대조차 못 하는 처지라서 셀프부양하는 중이다. 물론 재력과 능력을 겸비한 몇몇이야 사업에서 손을 못 놓고 있지만, 대부분이 인생 이모작을 절실히 원해도, 어깨를 비빌 마땅한 일자리가 있을 턱이 없는 풍찬노숙의 나날을 보낸다. 그래도 올해는 황금 개의 해라니 작은 희망 하나쯤은 품어봄 직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을 실행으로 옮길 절호의 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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