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오토바이 훔쳐 달아난
소녀를 나무랄수 있을까
우린 피해자이자 가해자

 

남북 정상 깜짝 만남
첩보작전 방불케해
양측 함께 ‘꼰’을 외쳐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졌던 유명한 판결이 생각난다. 14건의 절도와 폭행을 저질러 한차례 소년법정에 섰던 16세 소녀가 다시 친구들과 오토바이 등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무거운 형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김귀옥 부장판사는 ‘처분을 하지 아니한다, 는 의미의 ‘불처분 결정’을 내렸고, ‘외치기 처분’으로 대신했다.

김 판사는 소녀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내 말을 크게 따라해 봐.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그 소녀가 범행에 빠져든 아픈 사정을 참작해서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려고 김 판사는 그런 판결을 내렸단다. 이어 “마음 같아서는 꼭 안아주고 싶지만, 우리 사이에는 법대(法臺)가 가로막고 있어 이 정도밖에 못 해주겠다”며 소녀의 손을 꼭 잡았단다.

김 판사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있다. 그 소녀는 어려운 가정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반에서 상위권 성적이었으며 장래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귀갓길에서 남학생 여러 명에게 끌려가 집단 폭행을 당하면서 송두리째 삶이 뒤바뀌었다. 재판을 지켜보던 참관인들에게 김 판사는 이렇게 보충 설명했다.

“이 소녀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원인을 알고 보면 누가 가해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아이의 잘못에 책임이 있다면 여기에 앉아있는 여러분과 우리 자신입니다. 이 소녀가 다시 이 세상에서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우리가 다시 찾아주는 것입니다.”

우리말 중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꼬나본다’라고 한다. 서로 말판을 뚫어지게 쳐다볼 때의 ‘꼬느다’에서 온 말이다. 지방에 따라서 ‘꼬누’, ‘고니’, ‘꼰’, ‘꼰질’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고누’가 표준어이다. 어린 시절 땅바닥에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열십자를 긋고 돌과 나뭇가지 토막을 말로 써서 자신이 부리는 말 셋이 나란히 되면 이겼다는 표시로 “꼰!”하고 소리 질렸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고누는 바둑의 할아버지뻘 되는 놀이이다. 고누의 종류도 밭고누, 강고누, 우물고누, 곤질고누, 네줄고누, 아홉줄고누, 짤고누, 장수고누, 꽂을고누, 호박고누, 팔팔고누, 불알고누, 문살고누, 십자고누, 사발고누, 패랭이고누, 자전거고누, 자동차고누, 줄고누, 참고누, 포위고누, 왕 고누 등 말판을 긋는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꼰”은 장기에서 ‘장군, 멍군’, 바둑에서 ‘단수(아다리)’와 같은 이치다. 상대방과 번갈아 가며 흰 돌과 검은 돌을 한 알씩 놓아 집을 짓는 것이 바둑이라면 고누는 한 번에 한 칸씩 다가가서 상대의 말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해야 이긴다. 한쪽에서는 우레와 같은 갈채가 쏟아졌지만 개중에는 꼬나보는 사람들도 있다. 첫머리에 예로 든 김 부장판사의 ‘외치기’ 설명처럼 우리는 너나없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공범이며 또한 주범이다.

이 핑계 저 핑계, 이 걱정 저 걱정 타령으로는 통일의 기회를 절대로 잡을 수 없다. 남북 정상이 한 달 만에 또 만났다. 우리 측 문 대통령은 “친구 간에 만남처럼”이라고 강조했다. 당연히 복잡한 의전도 생략한 채 2시간여 동안 북측 정상과 판문점에서 마주 앉아 번개 회담을 진행했다. 오갈 때도 영부인(김정숙 여사)의 차를 타고 갔다니…. 이토록 두려울 게 없는 세상을 감히 누가 상상이라도 했던가. 비록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어도 이번만큼은 양측이 함께 그야말로 “꼰!”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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